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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중한 성벽과 그 옆의 고층빌딩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도심이 시안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을 때, 주변 지역에 흩어져 있는 유적들은 오로지 시안의 과거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시황제와 현종이라는, 위대한 왕국을 일으켜 세웠다가 스스로의 손으로 무너뜨린 두 남자의 영광과 그늘에 관한 이야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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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속에 그늘을 심은 두 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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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온다는 천년고도, 시안의 주변부를 지배하고 있는 것도 바로 스스로 위대한 왕국을 일으키고, 동시에 붕괴의 씨앗도 심어놓은 두 왕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진시황과 당현종.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왕들인 이 두 사람의 흔적은 빙마융 같은 땅 속의 거대한 유적에서, 혹은 화칭츠(華?池, 화청지)에 있는 벽화 속의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불가사의한 빙마융과 진시황릉의 위용, 아름다운 화칭츠의 모습은 그들이 지배했던 것이 정녕 위대한 왕국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동시에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위대한 왕국의 몰락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빙마융에 담긴 시황제의 욕심은 15년만에 왕국을 멸망케 했고 화칭츠에 비친 현종의 사랑은 치명적인 군사 반란을 불렀으니 말이다.한 사람의 왕이 왕국의 번영과 쇠퇴를 동시에 유발하는 것은 역사상 흔한 일이 아니다. 국가라는 것은 인간보다 훨씬 긴 수명을 갖고 있지 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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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던가? 한번 세운 나라가 몇 년 못가 망해버리는 것도, 전성기를 맞이한 나라가 몇 년 못가 큰 내란을 겪는 것도 중국이라는 나라의 거대한 ‘스케일’을 감안하면 뜬금없게 느껴진다. 어쩌면 시황제와 현종, 이 두 사람이 다스리는 동안 중국 대륙은 정말로 하나의 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기지개를 켜면 제국은 포효하고 그들이 기침을 하면 제국은 몸져누웠다. 그들이 명을 달리했을 때, 제국의 심장 역시 박동을 멈췄다(당나라의 경우 현종때 일어난 안녹산의 난 이후에도 2백여년을 더 버텼지만, 그 기간동안 이미 통일된 나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두 나라가 역사 속으로 스러져 간 이후, 그 한때의 위대함을 홀로 남아 증언하고 있는 유적들은 지금 가장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위대한 왕국에 대한 하루키의 말 그대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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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어서도 중국의 황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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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황제는 폭군이다. 폭군이라는 단어가 ‘자비롭고 인자한 왕’의 반대 의미로서 쓰였다고 볼 때 그는 분명 폭군이다. 하지만 그저 광폭하고 포악한 왕으로만 치부하기에 그가 이룩한 것은 상상 이상으로 많다. 광해군이 적어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것보다는 훨씬 총명하고 이성적인 인물이었듯, 시황제 역시 오로지 분서갱유(焚書坑儒)로만 기억되는 것은 그의 다른 업적들에 비추어 볼 때 억울한 일이다. 그는 자신의 말을 거역하는 자를 가차 없이 처벌했을 만큼 무자비했지만 화폐와 도량형과 마차 폭을 통일해 그 이후 모든 통일왕조의 초석을 놓았을 만큼 현명했다. 그는 세상 모든 것들이 자신을 해하려 한다고 생각했을 만큼 편집증적이었지만 세상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을 만큼 용감하기도 했다.시안의 동쪽은 여전히 시황제의 땅이다. 아니, 시안 전체가 아직도 그의 위세 앞에 머리를 숙이고 있다고 보는 게 옳다. 6천여 명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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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사로 이루어진 황제의 호위대는 아직도 눈을 부릅뜨고 있으며 그의 무덤은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았다. 시안 동쪽에 있는 작은 언덕 높이의 그의 무덤 꼭대기에 오르면 그 느낌은 더욱 명확해진다. 서쪽으로 멀리 시안이 보이고 북쪽에는 웨이허(渭河, 위하) 강이, 남쪽에는 리산(驪山, 여산)이 버티고 선 가운데 유일하게 탁 트인 동쪽 땅 밑에는 호위대가 창을 겨누고 서 있다. 네 개의 꼭짓점으로 이루어진 광활한 지역 가운데 우뚝 솟은 그의 무덤을 거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오로지 황토색 바람만이 죽음이라는 자연의 법칙은 거스를 수 없었던 황제를 조롱하듯 무덤을 사뿐히 밟고 지나간다. 무덤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가이드의 설명대로 지하 아방궁을 둘러싼 수은으로 만든 강 위를 황제의 관이 둥둥 떠다니고 있든 없든, 중국 사람들은 감히 시황제의 무덤 속으로 들어가 볼 엄두를 내지 않는 것 같다. 죽어서도 중국의 황제인 그의 잠을 방해할 수 없다는 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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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왕국을 맞바꾼 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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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안을 출발해 빙마융에 도착하기 조금 전에 자리잡은 화칭츠는 왕국을 하늘 위로 끌어올렸다가 한순간에 땅에 처박은 당 현종의 이야기를 담은 곳이다. 시황제가 죽어서도 황제이기를 바랐던 야심가였다면 현종은 죽어서도 양귀비의 연인이기를 바랐던 한 사람의 남자다. 사실 사랑에 눈이 멀어 모든 것을 잃는 남녀의 이야기는 상투적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목숨뿐만 아니라 나라를 내던진 왕들도 역사상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원성세(開元盛世)’라 불리는 당나라의 최고 전성기를 만든 왕이 바로 그 나라를 한 여자와 맞바꾸다시피 한 러브스토리는 극적이다. 그래서일까. 리산 바로 아래에 자리잡은 온천인 화칭츠는 유적 자체보다도 그 뒤의 이야기에 더 흥미가 가는 장소다.화칭츠는 양귀비에 푹 빠진 현종이 그녀를 위해 만든 온천 휴양지다. 양귀비와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전국시대 월나라의 서시(西施), 한대의 왕소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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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王昭君), 삼국시대 초선(貂嬋)에게는 각각 한가지씩의 약점이 있었다고 하는데, 양귀비의 약점은 겨드랑이 냄새였다. 화칭츠의 온천수는 겨드랑이 냄새를 없애는 데 좋은 효과가 있었기에 양귀비는 특히 이곳을 좋아했다 한다. 원래 아들인 수왕의 부인, 즉 자신의 며느리였던 양귀비를 아들과 헤어지게 한 뒤 비로 삼았을 정도로 눈이 멀어 있었던 현종이 양귀비와 함께 늘 이곳에서 노닥거렸음은 당연한 일. 해당화를 좋아했던 양귀비를 위해 만든 해상탕과 연화탕 등 다양한 모양으로 만든 탕들을 돌며 현종은 바깥세상으로의 관심을 점차 잃어갔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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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른 이야기들을 찾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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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려 2천 년 동안 수많은 왕조의 흥망을 지켜본 시안이기에 시황제와 당 현종 외에도 품고 있는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빙마융과 시황제릉, 화칭츠가 있는 동쪽에서 벗어나 시안 서쪽으로 넘어가면 당 3대 황제인 고종과 그의 부인이자 ‘여제’였던 측천무후가 잠들어 있는 건릉(乾陵)이 있다. 두 명의 왕을 갈아치우고 결국에는 스스로 황제에 오른 측천무후의 이야기 역시 시나 연극, 소설 등의 소재로 여러 차례 쓰였을 만큼 유명하고 흥미롭다. 너무 유명한 이야기의 무대가 된 장소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고 그만큼 더 신선한 곳을 찾고자 한다면 ‘양릉’이라는 곳도 있다. 양릉은 진나라 때의 시황제릉과 당나라의 건릉과는 또다른 면모를 보이는 한나라 때의 무덤으로, 지난 4월에야 처음으로 그 내부가 공개된 가장 최근의 고분 박물관이다. 기원전 2세기경, 한 4대 왕인 경제때의 무덤으로, 서한시대의 복식과 문화에 대해 많은 것을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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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기해주고 있는 곳이다. 가장 최근에 발굴이 된 것답게 무덤 내부 박물관의 시설이 훌륭한데, 방문객은 유리로 된 바닥 위를 걸어 다니면서 유리바닥 밑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복원작업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사실, 시안에서 흥미를 끄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온전히 자기 스스로의 몫이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이곳에 묻힌 수많은 명사들의 뒷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즐거워할 것이고, 고고학이나 문화인류학에 관심 있는 사람은 수많은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과 자료들에 열광하게 될 것이다. 한가지, 시안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어떤 경우에든 자신의 귀를 활짝 열어놓고 있지 않으면 많은 것을 놓치고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2천 년이라는 세월동안 쌓이고 또 쌓인 황토층만큼이나 시안의 모든 유적과 유물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왕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신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남자의 이야기나 여자의 이야기일수도 있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 혹은 증오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왕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던 기자는 다음번에 이곳을 다시 방문한다면 같은 것을 보고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안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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